성탄절... 우리 집 트리~♪
[ 1 ]
내가 아주 어렸을 때엔 아빠가 트리를 하셨다
초등학교 3학년 즈음?... 얼름판 썰매를 스스로 만들 때부터
성탄절 트리 담당은 나였다...아빠에게 전해 들은 이야기다...
그때부터 아빠는 트리를 만들지 않으셨다고 했다
잘 하든 못 하든 나에게 맡기셨던 게다
나무 창살로 별 등을 크게 만들어 창호지를 붙이고
"축 성탄" "기쁘다 구주 오셨네" "저들 밖에 한 밤중에" "우리 구주 나신 날" 등등
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그 안에 전구를 켰다
우리 집이 삼각형 지붕이어서 그 맨 위에 매달았는데 동네 입구를 들어서면 멀리서도 보이곤 했다
산에서 적당한 소나무를 베어와 화분에 꽂고 장식도 했다
우리 집엔 할아버지 때부터 내려온 꽤 큰 오동나무 상자가 있었는데 (45X45X30 정도 크기)
그 안엔 트리 장식 소품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요즘처럼 화려하진 않았지만 청, 녹, 적. 백색 아기 주먹만 한 구슬들도 있었고
(미군부대에서 나온 거라고 했다) 누군가 손수 만든 색색이 수술도 있었다
그 외엔 매년마다 식구들이 직접 만든 색종이고리, 종이지팡이, 은박지로 만든 작은 별,
특히 할아버지가 만드셨다는 작은 종들이 여러 개 있었는데
신문지로 만든 종이 찰흙으로 형태를 만들고 은박을 입힌 거였다
전통은... 한번 만들어진 소품들은 절대 버리지 않았다
그래서 일 년에 한 번 성탄 박스를 열 때마다 깔깔 거리며 이야기 꽃이 되곤 했다
그때는 귀했던 크리스마스 카드를 받으면... 하나도 버리지 않았고
트리 밑에 전시하거나 줄을 매고 빨래 널 듯이 걸어 또 하나의 장식이 되곤 했다
정말 오래되어 빛바랜 카드도 많이 있었다
내 기억으론... 트리 전구가 나온 뒤로?
성탄절이 돌아와도 성탄 박스를 못 벗어나는 소품들이 늘어나기 시작했고
세월을 이기지 못한 그들은... 결국 생을 달리하고 말았다
결국엔... 지금 식구들은 모르는... 내 가슴에만 남은... 빛바랜 추억이 되고 말았다
[ 2 ]
이상? 하게도... 매년마다 하는 성탄 장식의 의무를...
나의 아들 딸이 커 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려놓질 못했다
왜 그랬을까? 어떻게 된 걸까?
우선 섬기는 교회의 성탄 장식에 성도들의 참여가 없어져 버렸다
특히 아동부나 학생들에게도 성탄 장식은 꼭 전문가가 해야 하는 남의 일이 되었다
어쨌든... 내 아이들은 하려고 하지 않았고... 기다리다 못해... 결국엔 내가 하곤 했었다
시류~일 수도 있다... 세상에서 성탄 트리와 캐럴이 사라지고 있으니...
성탄 장식하는 날이 축제가 되는 아름다운? 풍경은... 이젠 꿈 일까?...
다행히도~
이쁜딸이 딱 한 번! 성탄트리를 했었다 너무너무 멋진...
아들도 그 딸이, 아들이 커가다 보니... 그 집에 트리를 하기 시작했다
더욱이 손녀의 임신 소식을 성탄절에 알게 되어... 태명을 "성탄이"라 지었다
걱정은 기우다... 그 네들의 성탄절도 나름대로 아름다울 것이다
우리 집의 성탄 트리를 모아... 여기 "마음의쉼터"에 남겨 둔다
《 이쁜딸의 성탄 트리 》
《 아들네 집 성탄절》
《 우리 집... 성탄 트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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