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를 찾아서

뿌리를 찾아서 - 전주이씨(全州李氏)의 공파(公派) 계파(系派) 파보(派譜)

정다운1004 2016. 1. 4. 12:58

전주이씨(全州李氏)의 공파(公派) 계파(系派) 파보(派譜)

 

전주이씨의 시조 이 한(李翰)은 전주에 토착해온 명문 태생이다.

신라 태종 무열왕의 10세손 군윤(軍尹) 김은의의 딸과 결혼했으며 문성왕(839-856) 때 사공(司空)을 지냈다.

그 후 대대로 신라시대에 벼슬을 해왔다.

 

고려 때 이 린은 무신정권 초기의 무인이다.

그는 무신난 주도자의 한 사람인 이의방의 동생이며 시중을 지낸 문극겸의 사위다.

이 린은 무인집권 초기에 형 이의방과 함께 권력을 장악한 소수 무인에 속했다.

그의 장인인 문극겸은 무신 난 직후에도 왕의 측근인 우승선어사중승을 역임했다.

명종 3년 김보당의 무인정권에 대한 반대로 일어난 계사의 난에 많은 문신이 살육 당할 때에도 문극겸은 이의방의 두둔으로 무사했다.

이 린의 아들 이양무는 장군을 지냈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행적에 대해서는 뚜렷이 나타난 것이 없다.

 

이양무의 아들이 18세손 이안사(李安社)로 이성계의 고조부이다.

이안사는 대대로 전주에서 살아온 호족이었다.

그런데 새로 부임한 지주와 사이가 나빠 그를 피해 강원도 삼척으로 피했다가 다시 함경도를 거처 원나라 간동으로 갔다.

그곳에서 다루가치 벼슬을 지냈고 증손자 되는 이자춘이 고려시대에 공을 세워 사복경에 이르렀다.

이자춘의 아들이자 시조의 22세손 이성계가 조선왕조를 창건, 전주이씨의 중시조가 되었다.

 

 

전주(全州)


한편 전주는 본래 백제의 완산(完山)이다.

신라 진흥왕 16년 완산주(完山州)를 두었다.

경덕왕 15년에는 지금 이름으로 고쳐 신라 9주(州) 중의 하나로 하였다.

고려조 성종 12년 승화절도안무사(承化節度按撫使)로 하였고,

현종 9년에는 안남대도호부(安南大都護府)로 승격시켰다가 다시 전주목(全州牧)으로 고쳤다.

조선 건국 후 왕실의 고향이므로 완산유수부(完山留守府)로 승격시켰고,

태종 3년 지금 이름으로 다시 개칭하였으며 세조 때는 진(鎭)을 두었다.

1895년 군(郡)이, 1935년 부(府)로, 1949년 시(市)로 승격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전주이씨(全州李氏) 공파(公派)

 

 

전주이씨(全州李氏)의 공파(公派)는 122파로

거의가 왕자인 대군(大君)과 군(君)을 파조(派祖)로 하며

전주 이씨의 분파(分派)는 시대 구분에 따라 세 갈래로 나뉘어 진다

 

1. 시조(始祖) 이한(李翰)부터 목조 이안사(李安社)까지의 사이에 갈라진 파

2. 목조(穆祖)부터 태조 (太祖)의 형제 사이에 갈린 파

3. 태조(太祖)의 후손으로 대군(大君)과 군(君)을 파조(派祖)로 하는 파(派)이다.

 

시조(始祖) 이한(李翰)은 덕망이 높고 문장이 탁월하여

신라 문성왕때 사공(司空) 벼슬을 지냈으며

그후 대대로 신라시대에 벼슬을 해왔다.


18세손되는 이안사(李安社)는 대대로 전주에 살아온 호족이었는데

새로 부임한 지주의 탐학을 규탄하자 지주가 군사를 휘둘러 보복하려 하여

그를 피해 강원도 삼척으로 피했다가 다시 함경도를 거처 원나라 간동으로가 그곳에서 다루가치 벼슬을 지냈고

증손자 되는 이자춘(李子春)이 고려시대에 공을 세워 사복경(司僕卿)에 이르렀다.


이자춘(李子春)의 아들, 즉 시조(始祖)의 22세손 이성계(李成桂)에 이르러

어지러운 국정을 바로잡고 배극렴(裵克廉)등 52명의 추대로 왕위에 오르게 됨으로

조선왕조(朝鮮王朝)를 창건, 전주이씨(全州李氏)의 종시조(中始祖)가 되었다.

 

전주 이씨(全州李氏)는

조선 시대에 상신 22명, 문형 7명, 호당 10명, 청백리 8명, 공신 8명, 장신 34명, 문과 급제자 877명을 배출했다.

전주 이씨(全州李氏)가 역사적으로 배출한 중요 인물들을 파별로 흝어보면

거의 정종. 태종. 세종. 성종 등 명군의 후손에서 압도적으로 많이 나왔다.

그 중 밀성군(密城君-세종의 왕자)파에서 6명의 상신과 3대 대제학을,

덕천군(德泉君-정종의 왕자)파에서 부자 대제학 등 3명의 대제학과 영의정 1명을 내었고

그 다음으로는 3명의 상신을 배출한 광평대군(廣平大君;-세종의 5남)파,

상신 2명을 낸 선성군(宣城君-정종의 왕자)파,

상신 1명과 많은 문무관을 낸 효령대군(孝寧大君;-태종의 차남)파 등의 순이고

무림군(茂林君-정종의 왕자)파와 덕흥대원군(선조의 생부)파는 무관집으로 유명하다.

 


전주이씨(全州李氏)는 조선 500년을 이끌어온 왕가이므로 가문의 번성기를 따로 기술할 필요가 없다.


전주이씨의 1백여 파중 으뜸가는 명가는 밀성군(密城君. 침=세종의 아들)파로써 6명의 정승과 3대 대제학(大提學)을 배출했으며,
덕천군(德泉君. 후생(厚生)=정종의 아들)파가 부자 대제학등 3명의 대제학과 영의정(領議政) 1명을 내어 밀성군파에 버금간다.
덕천군파 다음으로는 3명의 정승을 배출한 광평대군파(廣平大君派), 정승 2명을 배출한 선성군파(宣城君派),

정승 1명과 숱한 문신과 무신을 배출한 효령대군파(孝寧大君派) 등이 빼어나다.

 

전주이씨(全州李氏)는

오리정승(梧里政丞)으로 많은 일화를 남긴 인조때 영의정 이원익(李元翼),

흥선대원군(興宣大元君) 이하응,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李承晩), 철기(鐵驥) 이범석(李範奭)장군등

역사의 한획을 그었던 거목들을 배출하였다.

 

1585년(선조 18년) 이수광은 별시문과(別詩文科)에 급제, 1627년에 이조판서가 되었다.

임진왜란을 전후하여 여러차례 사신으로 명나라에 왕래,

당시 명나라에 와있던 이탈리아 신부에게서 "천주실의(天主實義)" "중우론(重友論)"을 얻어와

1614년(광해군 6년) "지봉유설(芝峰類說)"을 간행하여

우리나라 최초로 천주교와 서양 문물을 소개함으로써 실학발전의 선구자가 되었고 시문에도 능했으며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전주이씨(全州李氏) 파(系派) (가나다순)

 

견성군파(甄城君派)          경령군파(敬寧君派)          경명군파(景明君派)          경창군파(慶昌君派)          경평군파(慶平君派)

계성군파(桂城君派)          계양군파(桂陽君派)          광평대군파(廣平大君派)    근령군파(謹寧君派)          금성대군파(錦城大君派)

금원군파(錦原君派)          낙선군파(樂善君派)          능원대군파(綾原大君派)    담양군파(澹陽君派)          덕양군파(德陽君派)

덕원군파(德原君派)          덕천군파(德泉君派)    덕흥대원군파(德興大院君派)    도평군파(桃平君派)          무림군파(茂林君派)

무산군파(茂山君派)          밀성군파(密城君派)          복성군파(福城君派)          봉성군파(鳳城君派)          봉안군파(鳳安君派)

석보군파(石保君派)          선성군파(宣城君派)          성령대군파(誠寧大君派)    소현세자파(昭顯世子派)    수도군파(守道君派)

수춘군파(壽春君派)          순평군파(順平君派)          순화군파(順和君派)          숭선군파(崇善君派)          시중공파(侍中公派)

신성군파(新城君派)          안양군파(安陽君派)          안원대군파(安原大君派)    안창대군파(安昌大君派)    안천대군파(安川大君派)

안풍대군파(安豊大君派)    안흥대군파(安興大君派)    양령대군파(讓寧大君派)    양원군파(楊原君派)          영산군파(寧山君派)

영성군파(寧城君派)          영성대군파(永城大君派)    영양군파(永陽君派)          영응대군파(永膺大君派)    영창대군파(永昌大君派)

영풍군파(永豊君派)          영해군파(寧海君派)          온령군파(溫寧君派)          완성대군파(完城大君派)    완원군파(完原君派)

완원대군파(完原大君派)    완창대군파(完昌大君派)    완천대군파(完川大君派)    완풍대군파(完豊大君派)    용성대군파(龍城大君派)

운천군파(雲川君派)          월산대군파(月山大君派)    월평군파(月平君派)          은신군파(恩信君派)          은언군파(恩彦君派)

은전군파(恩全君派)          의안대군파(宜安大君派)    의안대군파(義安大君派)    의창군파(義昌君派)          의평군파(義平君派)

이성군파(利城君派)          익령군파(益寧君派)          익안대군파(益安大君派)    익양군파(益陽君派)          익현군파(翼峴君派)

인성군파(仁城君派)          인성대군파(仁城大君派)    인평대군파(麟坪大君派)    인흥군파(仁興君派)          임성군파(任城君派)

임언군파(林堰君派)          임영대군파(臨瀛大君派)    임해군파(臨海君派)          장천군파(長川君派)          전성군파(全城君派)

정석군파(貞石君派)          제안대군파(齊安大君派)    종의군파(從義君派)          주부공파(主簿公派)          진남군파(鎭南君派)

진안대군파(鎭安大君派)    창원군파(昌原君派)          평장사공파(平章事公派)    한남군파(漢南君派)          함령군파(함寧君派)

함령대군파(咸寧大君派)    함릉대군파(咸陵大君派)    함성대군파(咸城大君派)    함양대군파(咸陽大君派)    함원대군파(咸原大君派)

함창대군파(咸昌大君派)    함천대군파(咸川大君派)    해안군파(海安君派)          혜령군파(惠寧君派)          화의군파(和義君派)

회산군파(檜山君派)          회안대군파(懷安大君派)    효령대군파(孝寧大君派)    후령군파(厚寧君派)          희령군파(熙寧君派) 
 

 

전주이씨(全州李氏) 파보(派譜)

 

             자료 (1)

 

 

                자료 (2)

                              [참고] 별도 페이지에 수록한 "전주이씨 파계도"를 보면

                                       "1대 이한(李翰)"부터 "22대 태조(太祖)"까지의 인물소개 되어 있다

 

 

 

   임금은 한 씨족의 시조가 될 수 없다?

 

우리 나라가 한자문화권(漢字文化圈)에 속해서 살아왔지만,

  우리 나름대로의 독특한 한자 용어가 있다.

 

  임금님의 조상을 `선원(璿源)'이라고 한다든지,

  임금님은 만백성의 어버이이기 때문에 한 씨족의 시조가 될 수 없어

  제왕불감조기조(帝王不敢祖其祖)'라고 하는 표현 등은

  모두 우리의 독특한 용어라 할 수 있다.

 

  아름다운 옥[]'은 돌 중에서 가장 값져 `임금님'에 비유되므로

 `임금님의 조상'들을 `구슬의 근원' 또는 `구슬 같은 뿌리'라는 뜻에서 이런 용어를 쓴 듯하다.

 

  또 `제왕불감조기조(帝王不敢祖其祖)'는 `군왕불감기조(君王不敢其祖)'라고도 하여

  제왕 또는 임금은 감히 그 임금을 시조로 하는 종파의 조상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임금님은 모든 백성 공동의 부모 곧 국부(國父)이므로

  한 파의 시조 또는 중시조(中始祖)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임금님을 1세로 하여 세대(世代)를 따지는 것은 불경(不敬)스러운 것으로 여기어 왔다.

 

       

 

 

 

또 다른 비슷한 자료임. 우선 여기에 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