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안대군과 궁평부락(宮坪部落)
평내동 궁집 모습
남양주군 미금면 평내리(南楊洲郡 渼金面 坪內里) 산 97번지 백봉산(栢鳳山=잣봉) 서쪽에는
조선조 태조(太祖) 이성계(李成桂)의 중형(仲兄)인 이화(李和) 의안대군(義安大君)의 묘소가 있고,
같은 산 54번지에는 옛 궁(宮)터가 있다.
이는 지금으로부터 약 600년 전 태조가 등극(登極)한 뒤에
본인의 마지막 소원이었던 죽은 후의 묘소를 미리 정해 놓아야 하겠는데,
이를 결정하지 못하여 이를 근심을 하고 있던 중이었다.
어느 날 형인 의안대군과 함께 무학대사(無學大師)를 데리고
망우리(忘憂里)에 까지 나가 현 동구능(東九陵) 자리를 바라보고서,
무학대사가 바로 저곳이 능소(陵所)로서는 명당지지(名堂之地)라고 지세(地勢)를 설명하니
태조가 보기에도 그러한지라, “과연 대사가 말대로 거기가 좋겠군” 하고 흡족히 여겼다.
옆에서 무학대사와 아우 태조의 오고가는 이야기를 듣고 있던 의안대군이
“그럼 내 자리는 어디가 좋은가?” 하고 물으니, 무학대사가 태연히 말하기를
그 자리도 다 봐 놓았다면서 지금의 백봉산의 사좌(巳座)올시다 하고 말하였다 한다.
(그러나 이 자리는 여자가 머리를 풀어 헤치고 있는 모양이라고 함)
그 당시 태조는 무학을 대사로 존경하고 대우를 잘 하였는데
의안대군은 이를 늘 못 마땅하게 여겨, 아우 태조가 등극하자 중들을 4대문 밖으로 몰아내는가 하면
일반사람을 만나면 ⌜소승 문안 드립니다⌟ 라고 하며 절을 해야만 되도록 제도적으로 탄압을 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평소 의안대군에 대해서 불만을 품고 지내오던 무학대사는 의안대군의 묘소를 좋은 곳에 잡아 줄 리가 없었고,
백봉산에 마치 여가가 머리를 풀어 헤치고 있는 산세에다 잡아 주었다는 것이다.
이 후 의안대군은 태조 등극이후 모든 공(功)을 아우인 태조와 조카인 정종(正宗)과 태종(太宗)에게 돌리고
지금의 평내리 54번지에 집을 짓고, 여생을 즐겼다고 하며 단종사화(端宗士禍)로 인하여 이 집은 소실되었다 한다.
한편 의안대군이 별세하자 태종은 중부(仲父)의 장례를 국장으로 엄숙하게 치르게 하였으며,
유해는 역시 미리 잡아 놓았던 백봉산 사좌에 모시었던 것이다.
그 후 3대(의안대군, 완천군, 하령군)의 불천지위(不遷之位) 사당을 건립하였는데,
이 역시 소실되었으나 숙종 때 이르러 재건하였으며 구한말(舊韓末)까지 나라에서 제물을 하사(下賜) 하였다고 한다.
의안대군의 묘소는 얼핏 보기에는 명당자리 같아 보이나 실은 그렇지 못하다고 한다.
단종사화 때 의안대군의 손자인 하령군 이하 16명이 처형되었다고 하며,
그로 인하여 280년간이나 위안대군의 묘소를 실전(失傳)하여 오던중,
숙종대왕이 의안대군 아들 개국정사좌원훈일등공신(開國定社佐原勳一等功臣)의 공을 높이 여기고 특사신원(特賜伸寃)하였다.
현재 의안대군의 묘아래 궁평부락은 옛 궁터이며 대군의 후손이 살고 있다.
제보자/李圭福
출처 : 水原의 脈, 안익승 著 1996
* 부분적으로 사실(史實)과 다른 부분이 있으나, 본문(本文)을 그대로 게재(揭載)하였음.
의안대군(義安大君) 이화(李和) 묘(墓가) 있는 평내동 (坪內洞)의 유래
경기도 남양주시에 있는 동.
동남쪽에 백봉이 솟아 있어 비교적 높은 구릉지를 이루며, 계곡이 깊어 왕숙천으로 흘러드는 지류와 분류가 많다.
동 이름는 궁평(宮坪)과 장내(墻內)마을의 끝자를 따서 평내리라고 부른 데에서 비롯되었다.
1941년 양주군 미금면 평내리라고 부르다,
1979년 양주군 미금읍 평내리로 불렀다.
1980년 양주군에서 분리되어 남양주군이 신설됨에 따라 남양주군 미금읍 평내리로 바뀌었다.
1989년에 미금시 평내동으로 승격되었고,
1995년 미금시와 남양주군을 없애고 통합시를 설치하면서 남양주시 평내동으로 개편되었다.
행정동명과 법정동명이 같다.
자연마을로는 궁평·신촌·장내·구룡·지사·호만 등이 있다.
궁평은 조선시대 태조 이성계의 형인 의안대군의 묘를 쓴 후,
이곳에 궁을 세워 궁말이라고 하였는데, 훗날에 이르러 궁평으로 불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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